Groovers' Pick Vol. 27

그루버스는 주기적으로 타이틀들을 엄선해서 당 기간의 주목할 만한 추천앨범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로 최근에 발매된 신보가 우선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좋은 앨범들과 개별 곡들이 있다면 발매시점과 무관하게 적극 추천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일한 타이틀의 경우도 녹음과 패키지의 구성에 따라 다양한 버전들이 있는 최근의 음원시장 추세에 따라 같은 제목의 앨범이라도 서로 다른 점은 무엇인지, 추천의 의미가 있는 지 등을 세세히 구분해서 다양한 음악애호가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슈베르트 :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밤과 꿈, 슈만, 발리

키안 솔타니/첼로, 아론 필산/피아노

DG

 

 

 

 

 

그루버스 Pick Vol.25에서 소개한 세쿠 카네 메이슨처럼 본작의 주인공 키안 솔타니는 미국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유럽의 현실을 반영하는 음악가다. 대중적인 차원에서는 클래식 음악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큰 축구분야에서는 이미 한참 전에 이런 흐름이 시작됐었다. 레블뢰로 불리는 프랑스 축구 국가 대표팀은 지단을 필두로 아랍계와 다수의 흑인 선수들이 주축이 된 구성 때문에 우파 정치인들로부터 ‘프랑스 국가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는 공격을 받아야만 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축 미드필더 메스트 외질은 터키계다. 키안 솔타니는 페르시아계-오스트리아 첼리스트라는 이전에도 존재하기 힘들었던 태생의 음악가로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에서 태어난 엄연한 오스트리아인이다. 그리고 최근 음악계에서 상승일로인 그의 경력과 인기를 감안하면 앞서 예시한 축구계의 수퍼스타들과 같은 위치를 곧 클래식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처럼 보인다. 페르시아계-오스트리아인이라는 혈통은 동서의 화합을 모토로 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바렌보임의 주목을 끌어 동악단의 수석 첼리스트를 맡고 있기도 하다. DG 데뷔 앨범인 본작에서 솔타니는 서두르는 법이 없는 느긋한 보잉과 그와 대비되는 불타오르는 정열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프로그램부터가 이런 대비를 염두에 두고 짜여져 있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와 슈만의 첼로 소품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구성이었지만, 자신의 혈통을 소환하는 이란 작곡가 레자 발리의 <페르시아 민요 모음곡>과 연주회에서 앵콜로 연주한다는 자작곡 <페르시아 불의 춤>을 통해 동서 음악문화의 아우름까지를 겨냥하는 대목에서는 이 젊은 첼리스트의 음악적 야망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가곡을 편곡한 <밤과 꿈>은 솔타니의 운궁이 노래의 선율선을 여유있게 그릴만치 넉넉하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같은 작곡가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들을 때면 빠른 패시지를 주파해나가는 민첩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특히 <페르시아 불의 춤>에서 솔타니의 운궁은 첼로에서 불을 뿜게 하려는 듯 격렬하고 빠르다. 열정과 테크닉, 선천적인 듯한 악기로 하여금 노래 부르게 하는 감각. 벌써부터 차기작이 기대된다. DG의 최근 현 녹음은 중앙으로의 집중감이 약해진 대신 좌우 펼침이 좋아지면서 약간의 투명함이 느껴지곤 했는데 본작은 이런 경향의 예로 써도 좋을 만큼 그런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현을 재생하기 위한 일반적인 세팅으로 들어도 좋겠지만 피아노를 듣기 위한 조합이나 세팅으로 감상하면 의외의 오디오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파질 세이 : 4개의 도시, 드뷔시, 야나체크, 드뷔시 : 첼로 소나타

파질 세이/피아노, 니콜라스 알트슈태트/첼로

Warner Classics

녹음 : 2015.104-7,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잘츠부르크

 

 

 

 

 

앨범의 제목이자 파질 세이의 자작곡 4도시는 두 개의 뜻을 담고 있다. 먼저 시바스, 호파, 앙카라, 보드룸. 터키의 네 도시를 소재로 터키의 음악전통과 클래식 음악의 소나타 형식을 접목시킨다. 또한 자신을 포함해서 드뷔시, 야나체크, 쇼스타코비치 네 명의 작곡가가 산 네 개의 도시를 가리킨다. 지향점은 또렷하지만 지나치게 야심적이어서 충실한 실현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첼리스트 니콜라스 알트슈태트는 반드시 필요했다. CPE 바흐의 첼로 협주곡집으로 BBC 뮤직 매거진 협주곡상을 수상한 알트슈테트는 파질의 자작곡에서 반드시 필요한 오리엔탈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니까. 그가 첼로소리만이라면 요요마의 실크로드 앙상블의 그것처럼 들릴 확률이 높았던 음악이 파질 세이의 민첩한 손가락 놀림과 어우러지면 순식간에 ‘오리엔탈적 감성이 있는 현대음악’으로 화하는 것이 즐길 대목. 알트슈태트의 첼로는 홀로 노래할 때면 차라리 미니멀리즘적이거나 심지어 뉴에이지 음악처럼 들릴 때조차 있긴 하지만. 드뷔시-야나체크-쇼스타코비치로 이어지는, 첼로를 매개로 한 시대와 지역을 달리 한 음악여행은 경이적이기까지 하다. 귀하디 귀한 첼로를 위한 소나타를 남긴 세 명의 작곡가 고유의 음악어법을 충실히 재현하면서 연주하는 이만의 목소리를 이렇게까지 또렷이 남기기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평소 파질 세이의 지나친 개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앨범에는 정말이지 감탄했다. 화려한 비르투오시티를 뽐내는 첼로와 피아노의 이중주를 마치 간접음을 집중적으로 채집한 것처럼 공간감이 풍부한 녹음도 훌륭하다. 누구라도 듣는 순간 스튜디오가 아닌 콘서트 홀의 녹음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가까이에서 잡아낸 해상도 높은 스타일만이 현장의 리얼함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면 꼭 이 음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표현상의 제약 때문에 포르테 피아노를 기피하는 파질 세이의 아낌없는, 때로는 불타오르고 때로는 침잠하는 피아노와 그의 옆에서 못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알트슈태트의 첼로. 감상을 마치고 나면 이 두 음악가의 디스코그래피를 뒤적거리지 않곤 못 배길 것이다.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베아트리체 라나/피아노

Warner Classics

녹음 : 2016.11.7-9, 텔덱 스튜디오, 베를린

 

 

 

 

 

1993년 태생으로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쿨에서 은메달을 딴 베아트리체 라나가 본작을 녹음할 때 나이는 겨우 23세였다. 안토니오 파파노-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프로코피에프-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집을 데뷔작으로 난 다음 행보로는 지나치리만큼 대담하다는 우려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 유명한 아리아의 첫 음이 울리는 순간 이 대담한 시도가 결코 만용이 아니었음을 예감하게 된다. 두 번째 감상에서는 첫 번째의 감상 때의 의심에 찬 자세를 반성하기라도 하는 양 옷깃을 여미고 경청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그러니 바라건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를. 굴드의 저 유명한 두 번의 레코딩에 비해서 라나의 연주는 곡의 빠르기로 차별화를 두려는 시도를 아예 포기한다. 대신 그녀가 공을 들이는 디테일. 이렇게까지 구석구석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골드베르크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건반의 터치에 못지 않은 페달의 섬세한 운용은 그 백미. 발을 손처럼 쓰는 것이 아닐까 싶을만치 적절히 구사되는 페달링은 이 연주를 촉촉하고 그윽하게 만드는 핵심적 요소다. 현대 피아노의 강력한 다이내믹은 알듯말듯 미묘하게 구사되며, 덕분에 하프시코드를 성대모사하는 듯한 일련의 현대 피아노 연주들에 비해서 훨씬 더 하프시코드적인 ‘느낌’을 자아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 ‘느낌’은 앞서 칭찬한 그 어떤 요소보다 그녀의 연주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자칫 음이 매개가 되는 체스 같은 느낌을 주기 쉬운 이 곡의 감정적인 요소를 이토록 조근조근 들려주는 연주는 흔치 않다. 베아트리체 라나라는 훌륭한 피아노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담은 오디오 북으로서 이 녹음은 훌륭하다. 음악이 플레이하는 내내 다이내믹은 대체로 잊는 편이 좋다. 거기에 쏟을 모든 주의력을 디테일에 모두 탕진해라. 당신의 오디오가 디테일의 표현에 있어 어느만큼의 능력이 있는지를 테스트하기에 적격인 음원.

 

 

 

 

미설치 시, 플레이어 [다운로드] 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