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overs' Pick Vol. 11

그루버스는 주기적으로 타이틀들을 엄선해서 당 기간의 주목할 만한 추천앨범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로 최근에 발매된 신보가 우선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좋은 앨범들과 개별 곡들이 있다면 발매시점과 무관하게 적극 추천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일한 타이틀의 경우도 녹음과 패키지의 구성에 따라 다양한 버전들이 있는 최근의 음원시장 추세에 따라 같은 제목의 앨범이라도 서로 다른 점은 무엇인지, 추천의 의미가 있는 지 등을 세세히 구분해서 다양한 음악애호가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6, 17, 21

게자 안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티움 카메라타 아카데미카

DG

1961.5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 축제극장

 

 

 

이 음반은 ‘영화와 클래식의 만남’이라는, 가장 인기 높은 주제의 초기 성공사례로 유명하다. 이후로 영화의 플롯과 상관없이 클래식 음악을 끼워넣는 관행이 성행하게되지만, 이 음반에서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은 마치 영화를 위해 작곡된 곡처럼 잘 어울린다. 이 곡이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O.S.T라고 설명되는 블로그들이 수두룩한데, 사실적으로는 틀리지만 영화를 보게 되면 심정적으로는 긍정하고 싶어질 정도로.

피아니스트 게자 안다는 조국인 헝가리를 넘어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거장인데, 일찌감치 바르톡에 관한한 당대 최고의 대가로 손꼽힌 것을 감안하면 모차르트에는 상당히 늦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 심지어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마스터클래스를 매년 여름 가지고, 모차르트의 스페셜리스트인 클라라 하스킬과의 듀오 연주를 몇 년씩 했음에도 그는 모차르트에 관한한 극도로 신중했다. 그러다 1967년 전속 음반사인 DG에서 녹음에 착수해 1972년에 전집을 완성했는데, 이는 최초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집이었다. 지휘는 손수 맡았으며, 카덴자는 모두 안다 자신의 것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완성된 안다의 전집은 최초의 전집이라는 녹음사적인 의미에 만족하지 않는다. 전집으로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추천받을 때 안다의 이 녹음사에서 ‘최초’ 전집은 전통적인 추천에서 늘 첫 손가락에 꼽히는 명연이다. <엘비라 마디간>에서 이 연주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눈길은 당연히 협주곡 21번 K.467에 몰리지만, 17번 협주곡은 음악사적인 중요성과 연주의 높은 성취를 감안할 때 놓치기 아까운 명연이다. 왜 푸르트벵글러가 안다를 가리켜 ‘음유시인’이라고 극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담백하면서도 음 하나하나가 반짝이는, 거의 기적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같은 평가를 21번에 적용하는 일이 무성의하고 나태한 반복이 아님을 들으면 바로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전집은 염가물로, 인기가 높은 21번은 중가 리마스터링 시리즈인 오리지널스로 낱장 발매되었었는데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해서 오리지널스를 구입하는 것이 좋은 음질과 경제적 이점을 동시에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고해상도 음원은 음질적인 면에서 이전의 모든 버전을 압도한다. 호평을 받았던 오리지널스의 OIBP 리마스터링조차 고해상도 음원에 비하면 어둡고 답답하다. 안다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양손의 균형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톤을 한 번 들으면 비교가 무의미해 짐을 바로 인정하게 된다. 안다가 지휘하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티움 카메라타 아카데미카의 반주가 더 또렷한 전아함을 들려주는 데도 넋놓고 안다의 효율적이고 시적인 ‘톤’을 하염없이 듣다 보면 그 무엇에도 훼손되지 않는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다.

 

 

 

레스피기: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 고풍스런 무곡과 아리아 2번 / 보케리: 5중주 / 알비노니: 아다지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를린 필

DG

1977.12, 1978.1~2 베를린, 필하모니

 

 

토스카니니가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을 녹음한 이래 이 레퍼토리는 그의 후배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이탈리안 잡’처럼 되어버린 감이 있었다. 소수의 지휘자들만이 이탈리아계가 아님에도 성공적인 해석을 남겼는데, 늘 그렇듯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이 레퍼토리에서도 가장 빛나는 이름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카라얀은 3부작 전체를 녹음하는 대신 ‘소나무’와 ‘분수’만을 녹음하고, 그 빈 자리를 레스피기오 보케리니의 소품, 그리고 전설적인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로 채웠다. 클래식 음악이 대중음악에서 유래한 녹음기술을 거리낌없이 응용하면서 특히 오케스트라 녹음에서는 각 악기군의 음색과 이미지를 다층적으로 쌓아올리는 일이 가능해졌다. 색채적인 성격이 강한 대편성 음악에서 특히 강점을 발휘했던 이런 테크닉은 독자적인 세계로서의 레코드 음악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 일조하면서 한편으로 연주장에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인공적인 세계라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카라얀의 레스피기 녹음은 고해상도 음원이 이런 양면적인 평가를 얼마나 간단하게 화해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듯 하다. 확장된 정보량에 힘입어 각 악기군은 덧붙여졌다는 느낌보다는 듣는 이의 앞에 펼쳐진 공간에 자연스럽게 위치해 있는 것처럼 들리며, 경탄의 대상이었던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하면서도 빛나는 카라얀-베를린 필의 70년대 사운드가 비로소 디지털 시대에 부활했다. 다이내믹 면에서는 상당한 향상을 들려줬던 CD의 음은 질감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었는데, 고해상도 음원에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카라얀 특유의 레가토로 처리되어 마냥 아름답고 부드럽게만 흘러가는, 잘 다듬어지고 기가 막히게 잘 통제되어 있지만 어딘가 딱딱하고 부자연스럽다는 이유 때문에 연주 자체를 낮게 평가하는 비평가도 적지 않았었는데, 그들도 이번 버전을 들으면 적어도 사운드적인 면에서는 생각을 고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로마의 소나무> 첫 곡에서부터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는 그야말로 광휘를 내뿜는데, 놀랍게도 금관 악기 뿐만 아니라 현악기도 그렇다. 더 놀라운 것은 휘황찬란하고 호사스런 연주가 놓치기 쉬운, 아니 거의 필연적으로 상실하게 되는 느린 악장에서의 적막함과 우수가 완벽에 가깝게 구현된다는 점. 이런 철두철미함이 지나친 기능주의나 완벽주의로 여겨진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이번 버전에서는 소리의 황홀경이 너무나 압도적으로 펼쳐져서 적어도 듣는 동안에서는 그런 비평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하다.

알비노니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로 불리기에 이제는 그냥 이쪽을 곡의 제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체념이 들 정도의 인기곡인 마지막 곡은 카라얀-베를린 필만이 펼쳐보일 수 있는 경지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둔중한 오르간 반주에 뒤이어 베를린 필의 현이 세상의 쓸쓸함을 모두 담아 온 듯한 소리를 토해 낼 때 그 음을 듣기 전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이는, 내가 아는 한 없다. 가장 성공적이었던 클래식 음악 마케팅의 하나로 기억될 하이페츠의 비탈리-샤콘느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면 카라얀-베를린 필의 알비노니-아다지오는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음악’일 것이다. 워낙이 마음을 건드리는 음악이라 개선된 소리를 물리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발전된 정보량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 는 정도의 사족을 붙여 둔다.

 

 

 

멘델스존: 교향곡 전집

야닉 네제-세갱,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

DG

2016.2 파리, 필하모니아 드 파리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멘델스존의 교향곡 5번 ‘종교개혁’의 신보가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멘델스존과 인연이 깊은 라이프치히게반트하우스의 상임으로 취임한 넬슨스가 적역이겠으나 DG의 선택은 야닉 네제-세갱이었다. 오케스트라는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 작년 2월 필하모니아 드 파리에서 개최된 멘델스존 축제 기간 중 이틀에 걸쳐 연주된 실황을 녹음한 것인데, 라이브 녹음에 의한 멘델스존 교향곡 전집은 흔치 않다. 이것 말고도 이 전집은 특기할 만한 사항들이 몇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지휘자로 유명하지만 역사주의 연주자들이 거개 그렇듯 음악 학자로서도 유명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에 의한 새롭게 교정된 판본에 의한 최초의 녹음이라는 점을 꼽아야 할 것이다. 브루크너에 비할 바야 아니지만 자기검열에 무척 엄격했던 작곡가 멘델스존 자신에 의해 삭제된 피날레 앞의 악장 하나와 합창 테마를 되살렸다.

연주는 네제-세갱의 활기차고 명쾌하다. 네제-세갱의 지금까지의 디스코 그래피가 늘 그래왔듯. 이것은 결코 칭찬만이 아닌 것이, 활력보다는 폭력에 가까운 원시성이 요구되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 관해 비평가들은 그다지 좋은 평을 남기지 않았다. 멘델스존은 그런 점에서 네제-세갱의 스타일과 비교적 잘 맞는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질주하는 템포에 맞춰 악단 전체가 춤추는 듯한 <이탈리아> 교향곡이나 투명한 음향과 상쾌한 리듬이 최상의 효과를 낳고 있는 <스코틀랜드>가 그렇다. 하지만 같은 방식이 이 세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개혁>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인데, 설상가상으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나쁜 의미에서 일체가 되어 있다. 한마디로 음 분리도가 떨어진다는 점인데 이 세트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투명하고 상쾌한 울림이 지니는 장점마저 갉아먹는 요소. 애초에 오라트리오 풍의 장중한 해석을 선호하는 전통적인 팬이라면 네제-세갱의 발랄한 해석에 나쁜 인상을 받을 수 있는 형국에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장 필요한 때에 쓰지 못하는 셈이다.

전체적으로 전집으로서의 완성도는 들쑥날쑥하지만 <종교개혁> 정도를 제외한다면 라이브 녹음에서 기대할 수 있는 기민한 리듬과 스피디한 반응, 홀의 울림이 거의 날것에 가깝게 포착된 투명한 음향 등 최근 클래식 라이브 녹음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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