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0일에 벌어진 일은 최근 간간이 들려오고 있는 한국 음악계의 낭보 가운데서도 단연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5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다. 한국인이 이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마도 이렇게만 써서는 이번 쾌거가 지닌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것이므로, 콩쿠르 얘기를 조금 자세히 해볼까 한다.

 

반 클라이번은 1958년에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한 피아니스트이다. 적성국인 소련의 심장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미국인이 우승을 거머쥐리라곤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이 놀라운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1962년에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가 처음으로 열렸고, 이후 한 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4년에 한 번씩 꾸준히 개최되고 있다. 이 콩쿠르는 우승자에게 주는 혜택이 많아 많은 피아니스트가 도전하는 대회이다. 5만 달러의 상금과 함께 이후 3년 동안 세계 각지의 유명 연주회장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클래식 시장이 만성적인 침체에 빠진 요즘에는 더더욱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기회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여기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총 290명이 자신의 녹음을 제출해 지원하지만 결국 콩쿠르의 1차 예선에 진출하게 되는 것은 30명에 불과하다. 2차 예선에는 20명이 진출하고, 준결승에는 12명이, 결승전에는 6명이 진출하게 된다. 장장 18일에 걸친 콩쿠르에서 이토록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우승을 거머쥐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선우예권이 일부에서 오해하는 것처럼 이 콩쿠르 우승으로 반짝 떠오른 것은 아니다. 그는 2009년 인터라켄 클래식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데 이어 2010년에는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입상했으며 2012년 윌리엄 카펠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및 청중상과 체임버상을 수상한 데 이어 피아노 캠퍼스 국제 캠퍼스 국제 콩쿠르에서도 1위 및 청중상을 수상했다. 2013년 센다이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도 우승했으며 2014년에는 방돔상(베르비에 콩쿠르) 1위 수상, 2015년에는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외에도 플로리다 국제 피아노 콩쿠르 및 줄리어드 콘체르토 콩쿠르에서도 우승한 바 있다.

 

여기까지 읽고 선우예권이 마치 콩쿠르만 쫓아다니는 ‘트로피 수집가’처럼 보인다면 큰 오해를 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국내외의 유명 오케스트라들과 많은 협연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독주자로서, 또 실내악 연주자로서도 대단히 폭넓은 활약을 펼쳤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도 된다면 나는 2017년 상반기에 그가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공연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있다. 명징하고 날렵한 타건과 확고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연주였으며, 연주가 끝난 뒤에 독주 부분만 따로 발라내서 다시 듣고 싶어질 정도였다. 여러분도 아마 이 음반을 듣고 비슷한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젊은 피아니스트가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쳐갈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작곡가 키스 레이(Kieth Lay)가 이 피아니스트를 두고 했던 “이 젊은 연주자에게 훌륭한 명성이 따르기를, 그리고 누구도 그에게서 이 진솔함과 평정심을 앗아가지 않기를!”이라는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만 바랄 따름이다.

 

이 음반의 첫 수록곡인 모리스 라벨의 ‘라 발스’는 구상부터 완성까지 15년이 걸린 작품이다. 작곡가 자신에 따르면 그는 ‘요한 슈트라우스에게 경의를 표할 목적으로’ 이 곡을 썼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빈 왈츠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우아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생명력과 색채감이 넘치는 독특한 작품이 되었다. 모호하고 신비롭게 시작해 점차 왈츠 리듬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악상은 점차 고조되어 지극히 화려하고 성대하게 마무리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오늘날 구스타프 말러와 더불어 독일 후기낭만주의의 양대 기둥으로 평가받는 작곡가이지만, 생전에는 대적할 상대가 없는 독보적인 명성을 누렸다. 그는 당시로서는 전위적이었던 ‘살로메’와 ‘엘렉트라’라는 두 오페라를 쓴 뒤 모차르트적인 느낌을 당대에 되살린 오페라를 쓰려 했다. 그 결과 나온 작품이 ‘장미의 기사’라는 걸작이다. 슈트라우스보다 약간 뒤에 태어난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의 미국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하지만 활동의 태반은 영국에서 했다) 퍼시 그레인저는 ‘장미의 기사’ 중 마지막 사랑의 이중창 장면에 기초해 ‘램블’(Ramble)을 썼다. ‘긴 산책’이란 뜻과 ‘횡설수설’이란 뜻을 함께 지닌 단어를 고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레인저는 슈트라우스의 악상을 상당히 자유로운 방식으로 다루었다.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은 어떠한 난곡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것으로 유명한 우리 시대의 정상급 피아니스트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반 클라이번 재단의 위촉으로 제15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위해 ‘“무장한 남자”에 의한 토카타’를 썼으며, 심사위원 자격으로 이 콩쿠르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모든 콩쿠르 도전자는 예선에서 이 곡을 연주해야 했기에 선우예권 역시 이 곡을 쳐 보았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민요인 ‘무장한 남자’의 선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짧은 곡으로, 민첩하고 정교한 타건과 섬세한 음색 감각을 요구하는 이 작품은 아믈랭의 연주 스타일을 전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1789년에 라이프치히의 악보 출판업자인 브라이트코프는 하이든의 ‘여섯 개의 건반 소나타’를 예약제로 출판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예약자가 예상보다 적었던 탓에 결국 단 한 곡, ‘소나타 다장조’만 발표되었다. 단 두 악장으로 이루어진 곡이지만 같은 구성을 취하는 하이든의 다른 건반 소나타들보다 훨씬 웅장하며, 당시의 피아노로 최대한 구현할 수 있었던 표현의 폭을 미증유의 힘과 현란함으로 탐구하고 있다. 특히 소나타-론도 형식을 띤 피날레에서 피아노는 단독으로 거의 오케스트라에 맞먹는 스케일과 효과를 보여준다.

‘리타니’는 가톨릭의 이른바 호칭 기도를 가리키는 말로, 사제나 성가대가 선창하면 신자들이 응답하는 형태의 탄원 기도이다. 여기 수록된 ‘리타니’는 슈베르트의 가곡 ‘모든 영혼의 축전을 위한 리타니’를 리스트가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것으로, 리스트의 ‘프란츠 슈베르트의 네 개의 종교적 가곡’, S.562’ 가운데 첫 번째 곡이다. 리스트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원곡이 지닌 진혼 기도의 분위기를 대단히 아름다운 단순함으로 살려냈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성한 지 3년 뒤인 1913년에 40세가 된 상태였다. 이 해 상반기 전반에 걸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2번’은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나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과 비슷한 시기의 곡이지만 현대적이라기보다는 후기낭만적인 성향이 강하다. 라흐마니노프는 1931년에 이 곡을 더 간결하면서 형식에 충실하게끔 개정했다. 1악장에서는 화려하면서도 위태롭게 질주하는 1주제와 코랄 풍의 2주제가 대비를 이룬다. 일곱 마디짜리 경과구에 이어 등장하는 2악장은 내향적이며 1악장의 악상을 일부 차용하고 있다. 또 같은 경과구에 이어 시작하는 3악장 역시 1악장의 악상을 가져다 쓰고 있어 전곡에 걸쳐 강한 통일성을 보여준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화려한 기교가 유감없이 발휘된 악장이다.

관련 앨범들

Album Release Date Label Spec(bit/kHz)
2017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앨범
선우예권
2017-06-23 Universal Music
MQS24/96
Spectrum [Piano: Yekwon Sunwoo (선우예권)]
Benjamin Beilman
2016-03-04 Warner Classics International (PLG)
MQS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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