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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음악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리듬이 전면에 나선다는 점이다. 이 리듬을 지칭하는 용어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말은 바로 펑크(funk) 혹은 펑키(funky)라는 표현이다. 쉽게 말해 펑크는 강렬하고 유연한 흑인음악 고유의 리듬이다. 도대체 펑크의 기원은 무엇이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을까?

 

펑크라는 단어는 중부 아프리카의 바콩고(BaKongo) 말로 땀 흘리는 모습을 가리키는 'funki'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 사이에서 펑크는 자신들의 ‘체취’(백인들이 ‘더러운 흑인 냄새’라 부르던)를 비하한 말이었다. 1900년대 초반 뉴올리언스의 흑인 재즈 음악인들은 펑크를 백인보다 흑인 관객들이 더 좋아하는 분위기의 음악을 가리키는 은어로 사용했다. 재즈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와 드러머 아트 블래키(Art Blakey)는 1950년대 초반 더욱 흑인의 감성이 충만한 스윙(swing, 재즈의 독특한 리듬감)에 대한 고민 끝에 ‘Opus de Funk'라는 곡을 발표한다. 재즈인들 사이에서 펑크는 흑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의 분위기를 의미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흑인음악의 리듬 형태(와 태도/정신)로 펑크가 정립된 것은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을 통해서였다. 1950년대 말 처음 그가 주목받은 것은 ‘Please Please Please'라는 느린 곡이었는데, 지극히 개인적이고 노골적인 흑인의 삶을 다룬 절절한 가사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력적인 댄스와 압도적인 리듬의 황제 제임스 브라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그는 한 명의 흑인으로, 흑인 연예인의 음악에 대해 고민했다. 결과는 아프리카 민속음악의 특징인 타악기가 중심이 된 다층적인 리듬(폴리리듬, polyrhythms)의 미국(흑인)적 재구성이었다. 이는 제임스 브라운만의 독창성이기보다 재즈, 점프 블루스, 알앤비, 소울 등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흑인음악의 특징을 집약한 것이었다.

 

기타, 일렉트릭 베이스, 드럼, 건반으로 구성된 리듬 섹션이 리듬의 패턴(리프, riff)을 만들고 그 위로 관악기들이 또 다시 리듬을 입힌다. 펑크는 리듬의 끝없는 반복이다. 제임스 브라운의 1960년대 초반 대표적인 라이브들을 들어보면 여러 층으로 쌓여진 리듬 패턴이 조금씩 변화하며 계속되어 모든 노래들이 한 덩어리로 울렁이는(groove) 듯 느껴진다. 이러한 리듬의 전면성은 악기들의 솔로나 보컬도 마찬가지다. 보컬 역시 리듬 악기처럼 가사들을 짧은 선율로 톡톡 끊어가며 노래를 이어간다. 코러스 역시 리드 보컬과 악절을 주고받거나(call and response) 받쳐주며 리듬의 악센트를 강조한다. 느리건 빠르건 제임스 브라운의 음악은 청자들을 끊임없는 리듬의 세계로 몰고 가서 다 같이 몸을 움직이도록 만든다.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들은 1960년대 알앤비와 팝 차트 모두를 휩쓸었다. 가사 대부분은 흑인의 힘과 자랑스러움, 그리고 정력적인 개인의 삶에 관한 것들이었다.

 

19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 전위적인 록의 열풍은 젊은 흑인 음악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들은 제임스 브라운의 원초적인 펑크 리듬 위에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와 같은 실험적인 사운드를 얹는 새로운 펑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슬라이 앤 더 패밀리스톤(Sly and the Familystone)과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이 있다. 패밀리스톤은 일렉트릭 베이스를 핵으로 집중적인 리듬이 탁월했는데, 여기에 사이키델릭(Psychedelic)한 키보드가 더해지는 스타일이었다. 조지 클린턴은 펑커델릭(Funkadelic)과 팔리아먼트(Parliament) 두 밴드를 이끌었는데, 제임스 브라운과 함께 펑크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클린턴은 제임스 브라운 밴드 출신의 섹소폰 연주자인 메이시오 파커(Maceo Parker), 프레드 웨슬리(Fred Wesley), 그리고 베이시스트 “부치” 콜린스(William "Bootsy" Collins)의 도움을 받아 전통적인 펑크에 더욱 깊어진 폴리리듬과 록의 더했다. 여러 대의 라틴 퍼커션(Latin Percussion)을 사용하여 다양한 리듬 안에서 울림을 극대화 시켰다. 또한 전자음의 대폭적 수용은 현재 힙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흔히 클린턴과 그의 밴드들의 음악은 피-펑크(P-Funk)라 불린다. 이 밴드들의 멤버 하나하나는 여전히 흑인음악계에서 핵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이 되면 펑크의 댄서블한 리듬을 극대화한 디스코가 등장하게 된다. 디스코는 펑크 리듬을 기반으로 하지만, 백인 관객들을 수용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이 들어있다. 펑크는 당김음의 사용을 통해 리듬의 변화를 유도하지만 디스코는 좀 더 평이한 리듬을 변화없이 반복한다. 보컬의 선율 역시 펑크 특유의 톡톡 튀는 스타카토(staccato) 창법이 중심이지만 호흡이 좀 길어지고 멜로디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디스코는 1970년대 후반 세계 대중음악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쿨 앤 더 갱(Kool & the Gang), 얼쓰 윈드 앤 화이어(Earth, Wind & Fire), 오하이오 플레이어스(Ohio Players), 케이씨 앤 썬샤인 밴드(K.C. & the Sunshine Band), 도나 섬머(Donna Summer), 등은 대중성과 빼어난 펑크 연주가 잘 조화된 음악인들이다. 1970년대 중반이 되면 펑크 리듬에 경도되어 연주하는 백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특히 와일드 체리(Wild Cherry)와 애버리지 화이트 밴드(Average White Band)는 주목할 만한 감각을 보여줬다.

 

디스코의 시기가 끝나면서 펑크는 또 다시 새로운 조류와 만나고 변화해 나갔다. 프린스(Prince), 리빙 컬러(Living Colour), 더 나아가 백인인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와 같이 펑크(Punk)와 록(헤비 메탈적 요소를 포함한)을 융합한 펑크가 나타났다. 또한 이제는 흑인음악의 중심이 된 힙합이 생겨났다. 대부분 힙합의 샘플링은 펑크-디스코 시기의 음악을 사용한다. 조지 클린턴이 자신의 곡을 리믹스한 베스트 음반을 기획하자 이스트 코스트와 웨스트 코스트(east-west coast)의 힙합퍼들이 모두 참여하고자 했던 것은 힙합에 끼친 펑크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 펑크가 처음 시도된 것은 1970년대 후반으로, 사랑과 평화는 완성도 높은 연주로 디스코-펑크를 들려줬다. 한국 펑크의 특징이라면 록적인 필링이 강한 펑크를 연주한다는 점이다. 펑크 성향의 음악인 중 불독맨션, 펑키 브라운, 한상원(그는 사실 사랑과 평화 세대에 가깝다), 등의 음악은 백인 취향의 펑크에 가깝다. 이현도(한상원과 공동음반)처럼 힙합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아소토 유니온(윈디 시티), 지.플라, 얼쓰 등과 같은 흑인(알앤비-소울) 취향의 밴드들이 나타났지만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펑크는 여전히 소수의 음악이다. 하지만 수많은 음악과 접목되고 늘 변화를 이끌어 온 펑크의 역사를 살펴볼 때, 향후 펑크가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자양분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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