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큐멘터리 ‘We Are X(위 아 엑스)’

 

2017년 5월 개봉된 ‘위 아 엑스(We Are X)’는 아카데미 수상작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 2011)’의 프로듀서 존 배트섹(John Batsec)과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의 음악 다큐멘터리를 만든 스테판 키작(Stephen Kijak) 감독이 제작했다. ‘위 아 엑스’는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전설의 록밴드 ‘엑스 재팬(X Japan)’이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세계적인 밴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만날 수 있는 록 음악 다큐멘터리이다. 또한 ‘위 아 엑스’는 제32회 선댄스 영화제 편집상과 제23회 SXSW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해 나오며 음악 외 대중에게도 환영을 얻어냈다.

 

존 배트섹은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원데이 인 셉템버(One Day in September, 1999)’와 ‘서칭 포 슈가맨’을 포함해, 지금까지 30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나온 명 프로듀서이다. ‘위 아 엑스’의 작업을 위해 요시키(YOSHIKI)와 토시(Toshl)를 처음 만난 존 배트섹은 젊은 시절의 데이빗 보위(David Bowie)와 뉴웨이브, 고스록을 좋아했던 공통점을 발견하고 큰 흥미를 가졌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물론 엑스 재팬의 질풍노도와 같은 삶과 음악에 동화되면서 함께 다큐멘터리를 작업하기로 결심했다.

“같은 또래인 우리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드럼 연주를 시작하며 지금은 음악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고 있고, 요시키는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록음악을 한 결과 헤비메탈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또한 감독을 맡은 스테판 키작은 “엑스 재팬의 전성기 사진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연출을 맡기로 결심했다. 그들이 뿜어내는 비주얼의 아우라를 보는 순간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고 엑스 재팬에 빠져들었던 당시의 첫 느낌을 피력했다.

 

영화 ‘위 아 엑스’는 엑스 재팬의 드러머이자 리더인 요시키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과정에서 겪은 일을 담담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가 만드는 음악에 담긴 의미를 추적하는 한편 멤버들의 관계부터 해체와 재결성의 이유, 미국 진출 과정에서의 고뇌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엑스 재팬의 명곡들이 가슴이 찌릿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으며, 요시키가 진실로 털어놓는 멤버들 간의 불화와 탈퇴, 그리고 멤버의 죽음과 재결합하기까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다큐멘터리적인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엑스 재팬(X Japan)의 음악과 시작점

 

1990년대 대한민국 음악의 중심이 서태지였다고 한다면, 전아시아 음악의 중심은 엑스 재팬에 있었다. 1980년 후반부터 1998년 일본 문화 개방이 실행되기까지 엑스 재팬의 음악과 ‘X’의 매력은 국내 음악 팬들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엑스 재팬의 시작은 드러머 요시키(하야시 요시키, 林 佳樹)와 보컬 토시(데야마 토시미츠, 出山利三)와의 긴 인연에서 시작되었다. 유치원 친구였던 두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록 밴드를 구상하고 중학생 밴드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거쳐 고등학교 시절에는 밴드 노이즈(Noise)를 결성하고 멤버들을 정비해 1982년 밴드 ‘X’를 결성했다. 1984년 도쿄로 떠난 밴드 ‘X’는 라이브 하우스에서 공연을 하면서 1985년 6월에 첫 번째 싱글 [I'LL KILL YOU]를 발매하였다. 또한 그 해 11월에 컴필레이션 앨범인 [Heavy Metal Force 3]에 참여하면서 밴드 ‘X’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엑스 재팬은 하드록과 파워메탈, 스피드메탈, 프로그레시브메탈 등 다양한 헤비메탈 장르와 동양의 서정적 요소가 가미된 발라드 형식의 록 음악 등을 추구했다. 여기에 글램록과 일본의 전통 가부키에서 가져 온 판타지한 느낌의 비주얼계(Visual Kei, ビジュアル系) 스타일까지 가미시키며 인디 신부터 줄기찬 성공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엑스 재팬은 음악적으로 다소 저평가되는 부분도 있지만, 이들의 히트곡은 유명 헤비메탈 그룹인 소나타 아티카와 드래곤랜드 등이 리메이크하며 이슈를 모으기도 했다.

 

베이스에 타이지(Taiji), 리드 기타 히데(Hide) 그리고 리듬 기타에 파타(Pata)의 황금 라인업으로 이루어진 밴드 ‘X’(エックス, Ekkusu)의 첫 번째 데뷔 앨범 [Vanishing Vision]은 요시키가 만든 엑스타시 레코드(Extaxy Records)에서 1988년 발매되었다. 만장을 우선 판매했던 [Vanishing Vision]은 일 주 일만에 매진되었고, 총 17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또한 이 앨범은 오리콘 메이저 차트에 오르며 인디와 메인스트림을 아우르며 커다란 인기를 몰고 왔다.

1989년 소니(Sony) 레코드에서 발매된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자 첫 메이저 데뷔 앨범 [Blue Blood]는 70만장이 판매되었고, 오리콘 차트 6위에 올랐으며 무려 100주 동안 차트에 머물러 있었다. 롤링 스톤 재팬(Rolling Stone Japan) 잡지는 [Blue Blood] 앨범을 ‘일본의 위대한 100대 앨범’에 선정할 정도였으며, 국내에서도 청계천 등의 수입도매상을 통해서 비라이센스 음반이 십 수 만장 팔릴 정도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냈다. 대망의 성공을 거둔 요시키와 밴드 ‘X’는 1990년 ‘Japan Gold Disc Awards’에서 ‘올해의 밴드’로 선정되며 최정상에 올라섰다.

1991년 사운드적으로 향상된 시스템에서 완성하며 발매된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Jealousy]는 백 만 장이 판매되는 기염을 토하며 엑스 재팬의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 첫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른 앨범이라는 기록을 동시에 세워주었다. [Jealousy]는 ‘X’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마지막 앨범이자, 늘 요시키와 견해 차이를 보이던 베이스 타이지가 마지막으로 활동한 앨범이었다. 타이지가 탈퇴한 자리는 히데의 옛 여자친구의 애인이었던 히스(Heath)가 채웠다.

 

밴드 X Japan의 전성기와 해체

 

1992년 미국의 아틀란틱 레코드와 계약을 하게 된 밴드 ‘X’는 미국의 펑크 그룹 ‘X’와 혼동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밴드명을 ‘X Japan’으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29분짜리 대곡으로 전곡 영문 녹음된 오케스트라 앨범 [Art Of Life](1993)를 발표했다. 요시키가 곡을 쓰고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Art Of Life]는 60만장 이상 판매되었으며 오리콘 차트 정상을 차지한 첫 번째 ‘엑스 재팬(X Japan)’의 앨범이 되었다.

새 앨범 [Dahlia]의 준비는 1993년 헐리웃에 있던 요시키의 ‘One On One’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했던 앨범 커버와는 달리 흑백의 소녀를 찍은 사진은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작업한 것이다. 1996년 발표한 [Dahlia] 앨범 투어 공연에서 엑스 재팬의 멤버들은 비주얼계(Visual kei)의 현란한 의상과 화장을 벗어버리고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요시키의 목디스크로 인하여 투어는 계속되지 못했고, 1996년 도쿄 돔에서 이루어진 공연을 마지막으로 엑스 재팬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1997년 9월 22일 엑스 재팬은 보컬 토시가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같은 해 12월 31일 엑스 재팬은 도쿄 돔에서 ‘New Year's Eve concerts’를 마지막으로 10년 동안의 화려한 불꽃같았던 밴드 활동을 마무리했다.

 

엑스 재팬을 따라다니는 불행의 그림자

 

히데(마츠모토 히데토. 松本秀人. 1964년 12월 13일 ~ 1998년 5월 2일)는 중학생 때 처음 미국의 유명 록 밴드 키스(Kiss)의 앨범을 듣고 기타를 연주하게 되었다. 록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히데는 방 안에 슬림한 가죽바지를 걸어두고 꼭 그 바지를 입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지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했는데, 실제 그 결과로 슬림한 체형을 얻을 수 있었다. 미용실을 하고 있던 할머니로부터의 미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그의 패션창조의 기반이 되었으며, 이는 밴드 엑스의 외향에도 영향을 미쳤고, 엑스 재팬의 비주얼계의 시초가 되었다.

히데는 밴드 ‘X’의 드러머 요시키에게 기타리스트로서 가입해 줄 것을 권유받고 1987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1997년까지 리드 기타, 작곡, 편곡, 백킹 보컬을 맡게 된다. 히데가 엑스 재팬에서 작곡한 곡으로는 ‘Celebration’, ‘Joker’, ‘Scars’등이 있으며, 첫 솔로앨범 [Hide Your Face]과 두 번째 솔로앨범인 [Psyence] 등을 발매하며 솔로로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5월 2일 오전 8시 52분 엑스 재팬의 기타리스트 히데는 자신의 집에서 향년 35세로 사망하고 만다. 히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엑스 재팬의 멤버들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팬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의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가지 논란을 일으켰던 그의 최종 사인은 ‘기도폐쇄로 인한 질식사’로 내려졌다. 만취 상태에서 고온의 목욕을 하다가 저혈압으로 인해 목 내부의 기도가 폐쇄되어 저산소증이 온 히데는 스스로 응급처치를 위해서 타월을 묶은 것으로 밝혀졌다. 즉, 자살이 아닌 사고사였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엑스 재팬의 창단멤버였으며, 많은 골수팬들을 거느리고 있던 타이지 역시 불행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1966년 일본 지바현에서 태어난 사와다 타이지(沢田泰司)는 1982년 첫 번째 그룹 트래시(Trash)를 결성했다. 이후 디멘시아(Dementia), 프라울러(Prowler) 등의 그룹에서 활동했고, 1986년 ‘X’에 가입했다. 밴드 ‘X’에서 활동하며 주옥같은 앨범과 노래들을 만들었던 타이지는 밴드 이름이 '엑스 제팬(X Japan)'으로 바뀌기 전인 1992년 초 ‘X’에서 탈퇴했고, 그해 4월 일본 헤비메탈의 아성인 ‘라우드니스(Loudness)’에 가입했다.

2016년 ‘위 아 엑스’ 촬영 당시 요시키는 “그는 우리 밴드의 룰을 어겼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 전에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고 인터뷰를 하여 1992년 타이지의 갑작스러운 밴드 탈퇴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1993년 말에 타이지는 라우드니스에서 탈퇴했고, 1994년 그룹 ‘디티알(D.T.R.)’을 결성했다. 이후 알콜 중독과 사생활의 붕괴로 노숙자 생활까지 했던 타이지는 엑스 재팬의 재결합으로 다시 음악인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으나, 2011년 7월 11일 일본에서 사이판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소란을 피워 체포되었고, 7월 14일 사이판의 한 유치장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결국 그는 며칠이 지난 7월 17일에 사망했다.

 

엑스 재팬이 활동을 중단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는 다름 아닌 요시키의 오랜 벗인 보컬 토시였다. 그는 자신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엑스 재팬을 탈퇴하게 된 사연들을 담은 자서전 [세뇌 - 지옥의 12년으로부터 생환]을 2014년 발간했다. 그는 1997년 결혼한 전부인의 사주로 인해 2009년까지 사이비 종교에 세뇌되어 전 재산을 종교단체에 쏟아 부었다고 한다. 토시는 “빼앗긴 것은 돌아오지 않고 아픔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후회하는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토시가 끈질긴 사이비 종교의 유혹에서 빠져나오게 된 계기는 바로 요시키가 계획한 엑스 재팬의 재결성이었다. 2010년 그는 사이비 종교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미국에 있는 요시키를 찾아갔다. 그들은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함께 극복하고 다시금 신뢰를 갖는 관계를 회복하며 엑스 재팬의 재결성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엑스 재팬의 화려한 부활

 

엑스 재팬은 2007년 영화 ‘쏘우4’의 주제가 ‘I.V’를 통해 재결성을 알리게 되었다. 2008년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도쿄 돔에서 열린 엑스 재팬의 콘서트에는 사망한 히데의 빈자리 대신 루나 씨(Luna Sea)의 기타리스트 스기조(Sugizo)가 대신 연주를 하였다. 하지만 리더 요시키의 지병인 경추 척추간반 헤르니아가 악화되어 손떨림과 마비가 심해진 이유로 엑스 재팬의 모든 활동은 다시 중지되었다.

2010년 활동을 재개한 엑스 재팬은 미국의 룰라팔루자 페스티발을 시작으로 세계 투어에 올랐다. ‘X JAPAN WORLD TOUR Live 2011 Southeast Asian Tour’의 일환으로 엑스 재팬은 2011년 10월 28일 서울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2011 X JAPAN Live in Seoul’을 진행하였다. 2014년 6월에는 전 세계 첫 베스트 앨범 [THE WORLD]가 발매되었으며, 10월 11일에는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성공리에 공연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2017년 7월 대망의 ‘X Japan World Tour 2017 We Are X’의 공연이 일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다시금 엑스 재팬의 신화가 쓰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엑스 재팬은 리더 요시키의 끝없는 투지와 불굴의 정신으로 마치 절대 가라앉지 않는 전함처럼 세월이 지날수록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화려한 정상의 시간들과 그에 반대되는 절망스러운 날들을 겪어 나왔지만, 팬들이 지켜보는 엑스 재팬은 언제나 당당하게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있다. 변하지 않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이렇게 외친다. 위 아 엑스! 그렇다, 그들이 바로 위대한 ‘엑스 재팬’이다.

관련 앨범들

Album Release Date Label Spec(bit/kHz)
We Are X Soundtrack
X JAPAN
2017-03-10 Legacy Recordings
MQS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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