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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new age) 음악과 악마주의에 대한 글을 부탁받았을 때,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한국 사회에서 다양성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던 1980년대에나 어울리는 이러한 언사가 아직도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깐의 인터넷 검색 후, 뉴에이지 음악을 좋아하며 고민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얘기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놀랍다고 해야하는 것인지, 혹은 개탄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스럽다.

 

우선 우리는 뉴에이지(new age) 음악에 앞서, '뉴에이지(New age)'라는 것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2차 세계 대전을 거친 후, 서구 사회는 혼란에 휩싸였다. 서구인의 입장에서 식민지의 확대와 산업화의 성장으로 발전과 희망으로 가득해 보이던 20세기가 자신들끼리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는 전례를 찾기 힘든 혹독한 전쟁의 참화로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패를 나뉜 냉전이 시작되고 사회의 비인간화는 점점 가속되었다. 서구의 정신-문화적 토양에 대해 뒤돌아보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서구 밖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도 식민-제국주의의 시각을 배제하고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미개하고 가난하게 보이던 인도인의 알 수 없는 편안한 웃음, 티벳 사람들의 여유, 이런 것들은 서구인들의 눈에 새롭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을 뒤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서구인들의 눈에 동양인들의 미소는 놀라운 수준을 넘어서 신비롭게 비치기까지 했다. 서구인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한데 마음은 행복한 사람들의 비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낸 비밀의 내용은 자연의 순리에 내맡긴 생활방식, 명상과 수행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는 구도의 길과 같은 것이었다. 비틀스(The Beatles)같은 유명인사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인도와 티벳을 찾았고,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동양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신기한 무엇으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시선도 함께 들어있음도 냉철하게 짚을 필요가 있다.

 

요가, 참선, 명상 센터들이 미국과 유럽의 도시에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곳을 찾은 현대(서구)인들은 개발의 논리 이외에는 자리할 공간이 없는 일방적인 서구 문화를 개탄하며 환경 친화적으로 평온하게 살아가는 삶을 강조하는 동양인 스승의 얘기에 공감 했다. 이렇게 ‘진정한 나’를 찾고자 모여드는 사람들과 이들이 내세운 새로운 문화 만들기 운동이 바로 ‘뉴에이지(New age movement)’다. 뉴에이지 운동을 시작한 이들의 깨닫기 위해 사용한 수행방식의 원천이 힌두교나 불교 등에 있기 때문에 이 운동은 종교적으로 보면 기독교와 다른 바탕을 뿌리를 두고 있다. 명상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 궁극적으로 깨달은 사람은 윤회의 고리를 끊고 부처가 되는 것, 이러한 사상은 유일신과 구원을 추구하는 기독교의 세계-우주관과는 다른 세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음악 역시 기본적으로 자연 친화적이고 명상적인 방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서구의 현실에 절망하고 이 문제를 풀어낼 방법을 서구 밖에서 찾았던 뉴에이지 운동의 영향은 자연스럽게 비서구 음악의 요소를 대폭 차용한 음악으로 이어졌다. 아예 동양인들의 명상 음악에 주목하는 서구인들도 늘어갔다. 스타일은 다양하지만 뉴에이지라는 장르로 묶여지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음악의 목표는 현대 서구사회, 혹은 (전세계 어디라도) 서구화가 진행된 사회의 끝없는 발전의 논리에 찌든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휴식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새로운(new age) 음악들은 점차 확대되어 1986년엔 그래미상(Grammy award)에 뉴에이지 부문이 신설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우리가 뉴에이지라 부르는 장르의 가장 대표적인 스타일로는 피아노의 유려한 음색과 유러피안 클래식적인 선율을 이용하는 형태가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연주한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 데이비드 랜쯔(David Lanz), 앙드레 가뇽(Andre Gagnon)에서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인 연주자 이사오 사사키(Isao Sasaki), 유키 구라모토(Yuhki Kuramoto), 그리고 한국의 이루마, 노영심, 김광민 등이 이러한 스타일리스트다. 또한 좀 더 스케일이 크고 화려한 전자음을 사용하는 이들도 있는데, 야니(Yanni)나 반젤리스(Vangelis)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북유럽 민속음악인 켈틱(celtic)을 차용한 엔야(Enya), 씨크릿 가든(Secret Garden-이들은 유러피안 클래식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 존 휠른(John Whalen), 남미 잉카(Inca) 음악을 도입한 쿠스코(Cusco), 딱히 어느 나라라고 할 수는 없으나 동양적인 선율을 내놓은 기타로(Kitaro), 소지로(Sojiro), 티벳 출신의 나왕 케촉(Nawang Khechog) 등은 월드뮤직(World Music)을 이용한 뉴에이지 음악인이다. 한국의 퓨전적인 국악도 널리보면 뉴에이지 음악으로 볼 수 있다.

 

뉴에이지는 수많은 스타일을 가졌지만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음악, 혹은 그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음악을 총칭하는 장르의 이름이다. 최근의 경향은 뉴에이지 운동과 상관없이 편안하고 목가적인 느낌을 갖는 음악들에 대해서도 뉴에이지 음악이라 부르고 있다. 어쨌건 뉴에이지 운동과 뉴에이지 음악은 어떠한 형태이건간에 기본적인 사고의 공유에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앞서도 밝힌 바와 같이 뉴에이지 운동이 기독교의 세계관과 일치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 다른 사상을 모두 기독교를 반대하고 기독교를 폄훼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 한국은 다종교, 다인종, 다문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나의 신앙과 다르다고, 생김새가 다르다고, 사상이 다르다고 그를 무조건 나의 세계를 부정하고 파괴하고자하는 악(堊)으로 단정짓는 것은 말 꺼내기조차 창피한 수준의 흑백논리다. 뉴에이지 음악을 기독교 세계를 파괴하고자하는 악마의 음악이라고 보는 논리대로라면 우리나라에 자리한 수없이 많은 불교 사찰, 유림 서원, 요가와 기수련원은 모두 악마들의 온상이라는 결론에 이르를 수 밖에 없다.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그 누구도 불교 사찰과 요가 학원, 유림 서원을 바라보며 반기독교적 악마주의 집단이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이제 다름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배척하지 말자. 다름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금 지구의 수많은 문제들이 모두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생겨난 것임을 기억하자. 이제 우리는 다른 것을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다른 이들과 함께 공존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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