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록음악을 한다는 것과 록음악을 즐긴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 듯하지만, 그 간격은 가깝다. 뮤지션 스스로 여타 음악에 대한 흡수와 관심이 그 어느 국가의 뮤지션보다 남다른 이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연주자들이다. 또한 현재 안정권에 접어든 여러 록페스티벌은 탄생 초기에 일반 대중보다 분명 록음악을 사랑하는 여러 마니아와 팬들에 의해 안정권에 접어들 수 있었다.

이는 공연문화와 관련해서 일련의 사고와 실패, 그리고 경험을 바탕으로 뮤지션과 마니아 스스로 진화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을 페스티벌 문화로 최초 형성, 발전시킨 계기가 되었던 록페스티벌이 있었다. ‘트라이포트(Triport)’로 명칭되었던 1999년 그 현장을 되돌아보며, 국내 록페스티벌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한국 공연문화의 역사적인 그 날

 

1992년 2월 17일 올림픽 체조경기장. 이 날은 대한민국 공연문화의 역사가 뒤바뀐 시간이며, 자리였다. 이 날 공연의 주인공은 당시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뉴 키즈 온 더 블록(NKOTB)이었다. ‘광란의 밤’이라는 타이틀로 신문 기사가 나갔던 NKOTB의 이 날 공연은 관객 200여 명이 동시에 무대로 난입하며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7시 30분에 시작된 이 날 공연은 3시간 30분 동안 중단되었다가, 호텔에 투숙중이던 NKOTB을 겨우 설득해서 재개되었다. 그리고 이 날 공연은 다음날 새벽 0시 30분경에 끝이 났다. 1만여 명이 입장한 이후 공연장 바닥에 추가로 6천여 명을 입장시켰던 이 날 공연은 결국 사고로 이어졌으며, 1명 사망, 40여 명 중경상이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추가 입장과 안전 요원의 미비점은 분명 잘못되고 실패한 공연의 사례로 남아 있다.

 

그러나 NKOTB의 공연 사고는 대한민국 음악계에 몇 가지 악영향을 남기게 되었는데, 공연문화의 단절과 록음악에 대한 교묘한 압박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압사 사고로 인해 연일 미디어에서는 공연장의 허술한 시스템과 공연 문화의 부재에 대한 문제점과 경각심, 그리고 주최 측에 대해 상식 이상의 쟁점으로 몰아 세워갔다. 이후 공연과 관련된 모든 문화 예술 행사와 관련 사업은 전면적인 철퇴로 이어졌다. 그 중 가장 아쉬움을 남긴 공연이 하나 있었으니, 이미 예정되어 있던 금세기 최고의 기타리스트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의 공연이었다.

잉베이 맘스틴의 공연 취소는 사실상 당시 막 뿌리를 내려가던 록음악에 대한 제도의 사망 선고와 다름 아니었다. 실제로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수많은 중고생과 일반인들, 급기야는 뮤지션들조차도 상상 이상의 기대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수많은 기타 키드들에게 영웅과도 같았던 잉베이 맘스틴의 내한 공연 취소는 시기적으로 최전성기에 이른 그였기에 더 큰 안타까움을 남겼다.

 

물론 이를 계기로 국내 밴드들의 결집이 더 단단해진 부분도 발생되었다. 국내 뮤지션들의 음악적 기운이 응집되었던 것과 달리, 해외에서는 록페스티벌을 통한 음악 시장의 활성화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NKOTB의 사고 이후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99년 대한민국에도 최초의 록페스티벌이 열리게 된다. 인천 지자체와의 공조 속에서 오랜 기획을 거쳐 진행되었던 ‘99 인천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의미가 컸던 이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록페스티벌은 조금씩 본 궤도에 오를 수 있었고, 안정된 짜임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의 전신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의 기억

 

기억 1.

1999년 여름, 당시 문화예술계의 주요 이슈는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록페스티벌’인 트라이포트(Triport)에 있었다. 트라이포트의 기획은 ‘이 땅에 록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라는 단순한 이유와 미션으로 시작되었다. 이틀간에 걸쳐 진행 예정이었던 트라이토프는 1일권이 7만원, 2일권이 9만원으로 당시로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록페스티벌을 열게 되었다는 벅찬 기대로 주최 측은 여러 비용을 들여 행사를 위한 준비에 많은 투자를 했다.

주최 측은 당장에 손해를 보더라도 미국의 우드스턱 페스티벌과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그리고 가까이는 일본의 후지록페에 견줄 수 있는 대한민국만의 록페스티벌을 안착시키고 싶었던 커다란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포부에 부합한 것일까. 주최 측이 순차적으로 발표한 라인업이 발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땅에서 이들의 공연을 한 자리에서 진정 볼 수 있단 말인가.’라는 부푼 기대와 흥분으로 들썩였다. 그들은 스스로 ‘록의 도시’라고 인천을 칭송하며 약속의 땅, 인천으로 향했다.

 

당시 라인업

국내 팀 : 김종서, 김경호, 크래쉬, 노이즈 가든(Noize Garden), 레쳐(Letcher), 자우림, 크라잉 너트(Crying Note), 윤도현밴드, 시나위, 도원경, 닥터 코어 911(Dr. Core 911), 김명기 밴드

해외 팀 : 딥 퍼플(Deep Purple),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쉰(RATM), 프로디지(Prodigy), 매드 캡슐 마켓(Mad Capsule Market), DJ Heavy G, 오블리비언 더스트(Oblivion Dust)

 

기억 2.

1999년 7월과 8월의 기억이 새로운 즈음이다. 당시 세계적인 록페스티벌로 자리를 잡은 일본의 ‘후지 록페스티벌’의 취재를 마치고, 인천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에 뒤늦게 합류하기 위해 인천 공항에 내리기 직전의 일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제대로 된 록페스티벌의 현장을 향한다는 감동과 후지 록페스타벌의 잔영과 감동을 직접 비교할 수 있다는 흥분이 교차했다. 어느 순간 비행기 안의 작은 창가로 멋진 그림이 하나 펼쳐지고 있었다. 어딘지 모를 특정 지역에 천둥번개와 함께 엄청난 폭우가 내리고 있었던 것. 장관이었다.

그러나 옆을 지나던 스튜어디스의 한 마디에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인천에 비가 참 많이 온다더니, 엄청나네요.” ‘이런~’ 공항에 내리자마자 인천 취재팀에 급히 연락을 취했다. ‘공연 진행에 무리가 없느냐? 출연팀들은 대기 상태냐?’ 돌아온 답은 막막했지만 흥미로웠다. 공연 진행에 문제가 많으나, 출연 예정 팀들은 오히려 즐기는 분위기라고 했다. 더해서 폭우임에도 공연장으로 끊이지 않게 관객들이 유입되고 있다고 전했다. 

 

역사적인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 현장 난입

 

김포에서 내린 이후 잠시간의 고민 끝에 인천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 현장을 찾아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공연 예정 시간보다 3시간 뒤늦게 도착했음에도 페스티벌 입구는 매우 혼잡했다. ‘갈팡지팡’, ‘오락가락’ 딱 이 표현이 어울림직한 풍경이었다. 폭우로 인해 행사 자체 진행의 판단을 유보하던 스텝과 오랫동안 이미 페스티벌에 대한 기대감이 넘쳐났던 관객 사이에 적잖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너무나 엄청나게 쏟아 붓던 폭우에 안전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염려로 주최 측은 관객 입장을 제한하기 시작했고, 해외 페스티벌의 경우 폭우 속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머릿속 이미지로 박혀 있던 관객들간에 입장을 위한 타협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무대로 향하던 일행은 두 가지 모습에 경악하게 되었다. 하나는 시종 멈추지 않고 쏟아 붓는 비로 인해 관객석이라 할 수 있는 무대 앞 여러 곳의 바닥은 이미 흥건히 물바다였다. 또 하나는 그 와중에도 공연 진행을 위해 무대에 오르는 해외 팀들의 투지와 열정이었다. 이 날 공연은 출연팀과 스텝과의 논의 끝에 크래쉬(Crash)와 애쉬(Ash), 딥 퍼플(Deep Purple), 매드 캡슐 마켓(Mad Capsule Market), 그리고 드림 씨어터(Dream Theater)의 무대만이 연출되었다. 주로 라인업 앞에 위치해있던 국내 팀들은 이미 공연을 포기한 상태였다.

 

한국 록페스티벌 문화의 절망과 희망을 함께 보여줬던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

 

트라이포트 첫 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드림 씨어터와 크래쉬의 무대였다. 이미 무대를 마친 그룹들의 연주에 한껏 취해있던 관객들은 간절했던 대그룹 드림 씨어터의 연주에 제대로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잠시 멀쩡하던 하늘이 갑작스런 폭우와 천둥 번개를 내렸을 때 크래쉬의 안흥찬은 “딥 퍼플 형님들을 위해 이 한 곡은 꼭 불러야겠다.”며 ‘Smoke On The Water’를 그 어느 때보다 광폭하게 선사했다. 크래쉬의 음악과 엄청난 헤드뱅잉에 관객들 역시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열광했다. 연주 팀들이 연주에 임하던 사이 쏟아지던 비는 커다란 바늘과도 같았다.

중력에 의한 가속도로 온 몸에 부딪히던 빗방울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급기야 폭우로 인해 무대 스텝들은 몇 차례나 공연 중지를 거듭해야 했다. 공연 자체의 진행이 중단된 것보다 폭우로 인한 위기감을 더 느낀 관객 일부는 티켓박스에서 성난 시위대로 돌변했으며, 결단을 내려 큰 무대를 준비했던 기획사는 환불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관객도, 주최 측도 축제의 장에서 아쉬운 퇴로를 결정해야만 했다.

 

다음 날에 대한 기대와 첫 날 공연에 무대에 오르지 못한 팀들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2일권을 구매한 관객들은 숙박을 위해 캠핑존에서 야영을 준비했다. 하지만 텐트 안까지 차들어 오는 엄청난 폭우로 인해 인근 초등학교로 전경 버스를 타고 급히 대피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 날 밤 무대에서는 RATM와 프로디지(Prodigy)가 사운드 체킹과 리허설을 힘겹게 진행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의 양은 내리는 속도와 흘러 내려가는 속도가 반비례하기 시작했다. 결국 다음날에 이르러 나머지 모든 공연이 황망하게 취소되고 말았다.

혹자는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날을 회상하며, 지금도 말한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있냐고? 아니,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날, 트라이포트의 1박 2일”이라고.

 

Epilogue

 

2001년 트리이포트 록페스티벌은 다시금 진행에 박차를 가했으나, 예산 부족과 티켓 판매의 부진으로 중단되었다. 비슷한 사례는 이후에도 발생되었다. 2008년 올림픽 경기장에서 진행 예정이던 ‘썸머 브리즈 뮤직페스티벌’은 티켓 판매 부진으로 공연 열흘 전에 취소되었다. 트라이포트를 이어 같은 해 9월 동두천 종합 운동장에서는 국내 팀을 중심으로 라인업이 형성된 록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 이름하야 ‘동두천 록페스티벌’. 이 페스티벌은 현재까지도 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축소의 축소를 거듭하며 유명무실한 페스티벌로 남아있다. 이후 2000년 트라이포트의 명성을 잇고자 평론가 조직과 부산 지역의 록기획자들이 부산시와 함께 쏘아올린 페스티벌이 있으니 그 페스티벌이 바로 ‘부산 국제 록페스티벌’이다. 부산록페는 무료 공연과 해변이라는 최상의 조건 속에서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

 

어느덧 국내의 대형 록페스티벌은 제자리를 찾았고, 마니아는 물론 일반인들도 여름휴가 시즌 동안 그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한국 록페스티벌의 신기원이었던 ‘99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운영과 캠핑 여건, 관객석, 안전장비, 무대 등의 각 요소가 모두 부족했다. 그렇다고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에 ‘최초’라는 등의 의미만을 부여해야만 할까. 트라이포트는 록페스티벌의 성공을 위한 첫 단추와 과정을 훌륭하게 꿰어 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폭우를 뚫고 연주를 하던 무대 위의 연주자들과 그들과 하나 된 관객들이었다. 즈음의 록페스티벌을 보며 당시 트라이포트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우리 그 때 참 즐거웠어.”라는 미소를 지으며. 

관련 앨범들

Album Release Date Label Spec(bit/kHz)
Made In Japan [Original 1972 Mix]
Deep Purple
1972-12-01 Purple Records
MQS24/96
Images And Words
Dream Theater
2013-12-18 Atlantic
CD
Breaking The Fourth Wall: Live From The Boston Opera House
Dream Theater
2014-09-26 Roadrunner Records
MQS24/96
Rage Against The Machine
Rage Against The Machine
1992-11-03 Epic
MQS24/44
Irvine Meadows Live June '95
Rage Against The Machine
2016-04-15 (주)알레스뮤직 (Interference)
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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