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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ano Pavarotti

Type 솔로
Nationality Italy
Active Years 1961~2007
Genre Vocal/Choral
Style

Biography

아마 90년대 초반 정도였을 거다. ‘겨울의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나면, 당장 수험생이 되는 학년이 아닌 한 당시 학교는 사실상 한 학년의 거의 모든 과정이 마쳐지는 상황이어서 많은 수업이 대충 진행되던 분위기였다. (교사 재량에 따라서는 학급마다 설치된 VCR을 통해 영화도 보여주곤 했다.) 학교 운영에 대한 학부모들의 간섭이 유독 심해진 지금이야 그런 수업을 했다간 자칫 큰일이 날지도 모를 노릇이지만, 당시엔 학교에서도 그런 조그마한 낭만이나마 느낄 수가 있었다. 특히 그때는 음악 시간이 꽤 쏠쏠한 재미를 줬다. 음악실에 가서 수업을 받는 것은 같았지만, 음악에 관련된 명화들이나 클래식 콘서트 실황 등을 학급의 TV화면보다 더 큰 설치 화면을 통해 보여주기도 했으니까. 그 중 세 명의 성악가가 연미복을 입고 눈 돌아가느라 정신이 없을 큰 무대에 서서 ‘O Sole Mio’를 돌아가며 부르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다음 학년에 올라가면 아마 첫 실기 시험으로 이걸 부르게 될 거다”라는 음악 선생님의 얘기도 있고 해서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는 발음이 어떻게 되나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영상이 1990년 음반과 비디오, LD 등으로 출시된 ‘The 3 Tenors’라는 공연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고. 아무튼 그것이 글쓴이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얼굴을 처음 본 경험이었다.

축구선수를 꿈꿨던 그, 성악을 결심하다

파바로티는 1935년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제빵사 아버지와 담배공장 종사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맞벌이였던 관계로 어머니가 육아에 전념할 시간이 없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의 유모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무솔리니의 독재 정권 아래에서 경제 및 사회 활동의 효율화를 이유로 아이들이 동네 유모 혹은 보육원에서 양육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왠지 지금의 우리나라 사회상과도 많이 닮아 있다. 당시 같은 유모가 돌본, 파바로티보다 몇 달 먼저 태어난 여자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훗날 파바로티와 함께 숱한 오페라 무대에서 단짝으로 출연한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Mirella Freni)였다는 사실은 이제 파바로티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파바로티가 성악가의 길을 걷는 데에는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빵을 굽는 일이 본업이었지만 성악을 취미로 삼아 많은 노래를 했다고 하니 이러한 특징을 그대로 물려받은 셈. 다만 아버지의 성격은 조금 여렸고 어머니가 상당히 통 큰 성격을 지녔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의 뛰어난 노래 실력과 어머니의 활달한 성격의 교집합이 아니었을까 판단이 된다.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 하나 없을 정도로 건강한 몸을 타고났지만 그의 나이 열두 살에 심각한 병을 앓아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적도 있었다. 그가 훗날 세계적인 성악가가 된 이후 주변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몸 관리에 지극히 철저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니 어쩌면 이때의 경험이 ‘인생의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파바로티의 어릴 적 꿈은 축구 선수였다. 그래서 선수 활동을 하다 은퇴를 하게 되면 일선 학교의 체육 교사가 되자는 진로도 일찍부터 잡아놓고 있었고, 만약 그게 안 되면 학교에서 일반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해 보자는 계획(수학을 그렇게 잘했단다)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를 따라 간 모데나의 남성 합창단인 ‘로시니 합창단(Corale Rossini)’에서 성악가인 베니아미노 질리(Beniamino Gigli)를 만나게 된다.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와 함께 최고의 성악가로 인정받았던 그를 보고 파바로티는 성악가가 되고 싶어져 “얼마나 하면 선생님같이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성악가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 나도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는 걸.”이라는 질리의 대답은 지금까지도 성악가로 활동하면서 가장 큰 교훈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이내 성악가의 길을 걷기로 한 파바로티는 부모님과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성악가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미련 없이 그만 두겠다”는 약속을 하고 본격적인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1961년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레지오 에밀리아의 시립 극장에서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오페라 ‘라 보엠(La Bohème)’의 시인 로돌포 역으로 데뷔했으니 이때가 그가 서른이 되기 4년 여 전이었다. 이 공연은 큰 성공을 거뒀고, 이후 1990년을 전후해서까지 흐르는 그의 성공시대는 일반인들이 아는 그대로의 것이었다.

한국 대중에게는 [3 Tenors]로, 그러나 진가는 오페라

사실 파바로티의 소위 ‘범(汎) 대중성’이라면, 90년대 들어 호세 카레라스(José Carreras), 플라시도 도밍고(Plácido Domingo)와 공연해 커다란 상업적 성공을 거둔 [The 3 Tenors]의 시작과, 이를 전후로 전개했던 크로스오버적인 활동 등이 클래식과 별로 친하지 않은 대중들에겐 더 많이 알려져 있긴 할 터이다. 허나 엄연히 파바로티의 진가는 바로 오페라 작품에서의 목소리다. 워낙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데뷔 직후서부터 80년대 말까지 오랜 기간을 전성시대로 살아갔던 만큼, 그는 푸치니와 베르디(Giuseppe Verdi), 그리고 벨리니(Vincenzo Bellini)와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오페라 작품에서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구현하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특히 어릴 적 같은 유모의 손에서 자란 소꿉친구 미렐라 프레니,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이후 최고의 프리마돈나였던 조안 서덜랜드(Joan Sutherland) 등이 파바로티와 함께 이름을 올린 오페라 녹음반이라면, “그것만 확인한 다음 그냥 눈 감고 사도 좋은 선택”이란 소릴 들을 만큼 확실한 보증수표가 따로 없을 정도.

그의 오페라 아리아 중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작품은 푸치니의 ‘투란도트(Turandot)’의 아리아 ‘Nessun Dorma(공주는 잠 못 이루고)’다. 그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칼리프 왕자를 연기하고 조안 서덜랜드(후에 영국에서 기사작위 ‘Dame’을 받음), 몽세라 카바예(Montserrat Caballé) 등과 열연, 명 지휘자 주빈 메타(Zubin Mehta)와 런던 필 등이 참여한 1972년 ‘데카(Decca)’ 레이블 발매작은 지금도 많은 파바로티의 팬들이 가장 먼저 꼽는 오페라 앨범으로 항상 언급되곤 한다. 특히 그의 칼리프 왕자 역은 20세기의 많은 ‘투란도트’ 녹음 중에서도 모든 면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뿐 아니라 서덜랜드와 주빈 메타, 레코딩의 질감 등 모든 면에서 ‘20세기 최고의 투란도트 레코드’로 평가 받고 있는 만큼 오페라 애호가들이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명작이기도 하다. 또한 파바로티는 푸치니의 작품을 노래할 때 음정과 호흡부터 발성까지 모든 면에서 소위 ‘완전체’의 모습을 많이 선보이곤 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타계한 이듬해인 2008년 ‘데카’ 레이블은 푸치니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면서 파바로티가 레코딩한 다섯 편의 푸치니 오페라 작품(투란도트, 토스카(Tosca), 나비부인(Madama Butterfly), 라 보엠, 마농 레스코(Manon Lescaut)) 전곡을 담은 박스 세트로 발매하기도 했는데 현재 이 박스는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의 ‘콜렉터스 아이템’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녹음들이 24bit/96kHz의 고음질을 기반으로 발매된 것은 이 박스 세트가 최초였다.)

그가 남긴 베르디의 오페라 녹음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인 추천은 파바로티의 팬들도 많이 알고 있는 ‘리골레토(Rigoletto)’와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춘희)’로 모두 조안 서덜랜드와 호흡을 맞춘 ‘데카’ 레이블 발매반이다. 특히 호색가 만토바 공작 역을 맡아 열연한 1971년 녹음으로 가장 젊고 훌륭했을 적 목소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리골레토’는 클래식 마니아라면 필청 코스이며, 시기는 조금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훌륭한 ‘명 콤비’로서의 아우라를 부족함 없이 발산하는 1979년의 ‘라 트라비아타’는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다. 두 녹음 모두 출연진과 오케스트라 등 연주의 호흡이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하는데, 특히 ‘리골레토’에서 런던 심포니(London Symphony Orchestra)를, ‘라 트라비아타’에서 내셔널 필하모닉(National Philharmonic Orchestra)을 지휘한 리처드 보닝(Richard Bonynge)은 조안 서덜랜드의 남편으로 부창부수의 호흡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앞서 파바로티의 오페라 작품들 중 소프라노로 참여한 협연자의 이름에 조안 서덜랜드 혹은 미렐라 프레니의 이름이 보이면 “눈 감고 사도 된다”는 언급을 했는데, 현재 MQS로 들을 수 있는 작품들 중에서도 이는 꽤 많다. 1967년 ‘연대의 딸(La Fille Du Régiment)’, 1971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 등 도니제티의 작품을 서덜랜드와 협연한 ‘데카’ 레이블의 일련작이나, 역시 서덜랜드와 호흡을 맞춘 1966년의 ‘텐다의 베아트리체(Beatrice Di Tenda)’, 1973년의 ‘청교도(I Puritani)’ 등 벨리니의 오페라 앨범(역시 ‘데카’ 레이블) 등도 수작에 꼽힌다. 그 외 지면상 언급하지 않은 작품들 중에서도, 60년대 혹은 70년대에 녹음된 그의 작품이라면 무엇을 집어 들어도 후회 없을 만큼, 이 시기 그는 수작들을 양산해냈다. 그만큼 당시의 파바로티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미 올라섰던 것임을 인증한 셈이다. 다만 너무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가창을 갖고 있었기에 일각에서는 “기교는 넘치나 감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이는 현존 최고의 프리마돈나로 평가 받는 조수미가 비슷한 이유로 비판을 당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듣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게 글쓴이의 의견이다.

확연한 몰락과 최후, 그러나 그의 클래스는 영원하다

파바로티의 가장 완벽한 ‘오페라 단짝’이었지만 지난 1990년 고별 공연을 끝으로 더는 무대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서덜랜드의 은퇴 이후 그 역시 내리막길의 인생을 걸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에게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매니저들이 캐슬린 배틀(Kathleen Battle)이나 셰릴 스투더(Cheryl Studer) 등의 훌륭한 파트너들을 붙여주었음에도 서덜랜드 혹은 프레니 등과 호흡을 맞췄을 때의 모습을 더는 보여주지 못했다. 스스로의 목소리에 자신이 없어지면서는 상당수의 공연에서 립싱크(1992년 고향 모데나에서 공연할 때 립싱크를 했던 것이 밝혀져 구설수에 오른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로 무대를 때우면서 명성에 먹칠을 하기도 했고, 가정사를 비롯한 여러 내/외적인 스캔들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나마 [The 3 Tenors] 시리즈의 공연과 앨범이 대중에게 상당히 다가갔다는 것,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셀린 디온(Celine Dion)을 비롯해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듀란 듀란(Duran Duran)과 U2, 그리고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 등과 작업한 여러 결과들(대부분 [파바로티와 친구들(Pavarotti & Friends)] 시리즈에 해당됨)이 팝 팬들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 위안거리였다고나 할까.

이렇게 음악 인생의 후반기가 다소 좋지 못했음에도 파바로티가 20세기 최고의 테너로 평가 받는 건 당연하다. 전성기 시절 워낙 뛰어난 녹음들과 공연을 많이 했고 명반도 수두룩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상당히 활발히 음악적인 활약을 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2006년 2월 동계 올림픽이 열린 토리노에서 가진 그의 마지막 무대였다.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더는 노래할 수 없는 상황의 그였지만 현장에서 온전히 노래할 수 없는 대신 당일 함께 무대에 오른 지휘자를 비롯해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와 사전에 녹음을 하고 그것을 립싱크와 핸드 싱크로 감쪽같이 대체해 죽기 전까지 완벽한 무대를 대중들에게 선사하도록 노력했다는 것이 훗날 밝혀지기도 했다. 서있기조차 힘들었던 그 무대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보는 관객들에게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그리고 2007년 9월 6일, 하늘의 품으로 돌아가면서 그는 단 두 글자의 이름을 남겼다. 最高. (배영수)

Album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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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ople's Tenor Universal Music
Pavarotti Sings Rare Verdi Arias [Remastered] Sony Classical
24/192
Pavarotti 24 Greatest HD Tracks Decca
24/96
Pavarotti The 50 Greatest Tracks 1/2 Decca
24/44
Pavarotti The 50 Greatest Tracks 2/2 Decca
24/44
Verdi: Requiem Warner Classics International (PLG)
Puccini: Madama Butterfly Decca
24/96
Donizetti: La Favorita Decca
24/96
Bellini: I Puritani Decca
24/96
Puccini: La Bohème Decca
24/96
Puccini: Turandot Decca
24/96
Donizetti: Lucia Di Lammermoor Decca
24/96
Verdi: Rigoletto Decca
24/96
Verdi: Macbeth Decca
24/96
Donizetti: L'Elisir D'Amore Decca
24/96
Donizetti: La Fille Du Regiment Decca
24/96
Bellini: Beatrice Di Tenda Decca
2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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